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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g Maddux.



그냥 자려다가 아무리 그래도 블로그 주소가 maddux31인데.
명예의 전당에 오늘 들어가게 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야구 선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기자회견하는 걸 조금 들었는데.
정확하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트라이크 존과 심판 이야기, 오늘 아침에 소식을 들었을 때 상황 뭐 이런걸 이야기 하던데.
뭐 어쨌든 저 투수만큼 대단한 투수는 없다.
방금 검색해서 이것 저것 찾다 보니까.


Greg Maddux: 10 great performance 이런게 있다.
10. September 1986: In his first start, a complete game win against his brother, Mike, and the Phillies.

9. May 2001: He becomes the first pitcher since 1919 to record two 1-0 complete game shutouts in the same month.

8. Maddux wins his 355th career game on Sept. 27, 2008. The win moved him past Roger Clemens for eighth on the all-time list.

7.1998 NLDS Game One: Maddux throws a complete game in Atlanta's 2-1 win over Houston.

6. July 17, 2001: A complete game shutout vs. Tampa Bay

5. Making his debut as a Brave in 1993 on Opening Day, Maddux pitched a gem, hurling a complete game shutout against his former team, the Cubs.

4. The entire 1994 season: Maddux posted a 1.56 ERA, logged over 200 innings, pitched 10 complete games, registered three shutouts, collected 156 strikeouts, and surrendered only 32 walks.

3. 1995 World Series Game One: Maddux deals a two-hit, complete game win against Cleveland (just the 15th two-hitter in WS history) that catalyzed the Braves in their first World Series triumph in baseball's modern era.

2. July 2, 1997: Facing the Yankees for the first time since his terrible outing against the Yankees in the '96 World Series, Maddux sparkled, throwing a three-hit shutout with eight strike outs, one double play, and one runner picked off—all on just 84 pitches. The game took 2 hours and 23 minutes.

1. July 22, 1997: Maddux again dazzled his former team, the Cubs, in a 76-pitch complete game victory.

그래도 저것 보다는 한글로 친절히 설명된 김형준 기자가 쓴 글이 낫다.

데뷔전, 형과의 맞대결(1986년 9월3일, 9월30일)
연장 15회, 리글리필드가 어두컴컴해지자 주심은 서스펜디드를 선언했다(시카고 컵스는 2차대전 때 조명탑을 조선소에 기증했다는 자부심에 1988년까지 조명시설 없이 버텼다). 다음날 속개된 경기. 17회말 조디 데이비스가 안타를 치고 나가자 컵스 진 마이클 감독은 대주자를 기용했다. 확장 로스터로 올라온 스무살짜리 신인투수 그렉 매덕스였다. 18회초 매덕스는 컵스의 8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지만, 2번째 타자 빌리 해처에게 결승 솔로홈런을 맞고 패전투수가 됐다. 매덕스 데뷔전의 양팀 선발투수는 놀란 라이언(휴스턴)과 제이미 모이어였다.

다음 등판이자 메이저리그 첫 선발등판에서 신시내티를 상대로 3실점 완투승을 따낸 매덕스는, 9월30일 시즌 마지막 등판에서 메이저리그 역사에 이름을 올렸다. 4살 위 형 마이크(필라델피아)와 함께 역사상 첫 '형제 루키투수 선발대결'을 만들어낸 것. 승리는 동생이 가져갔다. 형 마이크 매덕스가 3이닝 3실점 패전을 안은 반면, 그렉 매덕스는 7⅔이닝 3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167구(1988년 5월18일)
1988년에 부임한 돈 짐머 감독은 '어깨는 쓸수록 단련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매덕스도 시즌 첫 등판에서 143구 1-0 완봉승의 신고식을 치렀다. 5월12일 샌디에이고전. 매덕스는 9회까지 1점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컵스도 9회까지 1점도 뽑지 못했다. 연장 10회초 짐머는 투구수 122개의 매덕스를 또 마운드에 올렸다. 매덕스는 공 12개로 3자범퇴를 시켰다. 10회말 1사 만루에서 밴스 로의 스퀴즈번트가 성공하면서 매덕스는 10이닝 1-0 완봉승을 거뒀다. 내셔널리그에서 다음 '10이닝 완봉승'이 나온 것은 17년 후인 2005년(마크 멀더)이었다.

바로 다음 등판에서 매덕스는 또 10회까지 1점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컵스 역시 또 1점도 뽑지 못했다. 연장 11회초 투구수 139개의 매덕스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매덕스는 2사를 잘 잡았지만, 이후 연속 5안타를 맞고 무너졌다. 그제서야 짐머는 다른 투수를 올렸다. 매덕스의 투구수는 167개였다.

15년 만의 20승(1992년 10월1일)
포스트시즌 탈락이 일찌감치 확정된 리글리필드에 만원관중이 몰려들었다. 이미 7월에 결별을 선언한 매덕스의 마지막 등판을 보기 위해서였다. 상대는 지구 우승을 확정지은 강타선의 피츠버그. 하지만 매덕스는 피츠버그를 9K 완봉승으로 잠재우고 시즌 20승에 성공했다. 컵스 투수로는 1977년 릭 러셀 이후 15년 만의 첫 20승이었다. 컵스 팬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별의 기립박수를 보냈다. 시즌 후 매덕스는 더 많은 돈을 제시한 뉴욕 양키스가 아닌 애틀랜타를 선택했다.

아! 노히트노런(1995년 5월29일)
무사사구 완투승만 18번이나 거둔 매덕스지만, 노히트노런은 한 번도 달성하지 못했다. 그의 목표는 노히트노런이 아니기 때문이다. 휴스턴 원정경기에서 매덕스는 7이닝을 퍼펙트로 막았다. 투구수는 76개. 하지만 8회 첫 타자 제프 배그웰이 휘두른 방망이에 모든 것이 날아갔다. 배그웰의 타구는 담장을 넘었고 결국 매덕스는 1피안타 1실점 완투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로부터 11년 후인 2006년, 매덕스는 다저스 데뷔전에서 6회까지 노히트노런을 이어나갔다. 투구수는 72개. 하지만 갑작스런 비로 경기가 중단됐고 더 이상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황금시대(1993년 8월1일~1995년 8월5일)

정확히 2년 동안, 매덕스는 56경기에 나서 52번의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다. 실패한 4번 중 2번은 점수차가 크게 벌어져 5이닝 1실점과 5⅔이닝 1실점으로 내려온 것이었으며, 한 번은 6회까지 1실점으로 버티다 7회에 4점을 내준 것이었다. 56경기에서의 성적은 37승9패 평균자책점 1.61 WHIP 0.88. 완투가 20번이었으며, 8이닝 이상을 던진 것이 35번이었다. 1994년 7월3일부터 95시즌 마지막까지는 원정경기 18연승(20경기 18승무패 0.99)을 달려 메이저리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94-95년이 파업시즌이었다는 것과 우리가 메이저리그를 쉽게 접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는 게 지금도 아쉬울 따름이다.

양키스를 만나다(1996년 월드시리즈)
매덕스가 애틀랜타를 택한 이유는 양키스보다 애틀랜타의 전력이 더 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96년 매덕스는 자신이 퇴짜를 놓은 양키스와 월드시리즈에서 만났다. 매덕스는 지미 키와의 선발대결이었던 2차전에서 8이닝 무실점의 완벽한 승리를 따냈다. 애틀랜타 입단 후 포스트시즌 성적은 11경기 7승3패(팀 8승3패) 2.59. 2승1패로 앞서나가던 애틀랜타는 4차전에서 6-0으로 앞서던 경기를 역전 당한 데 이어, 스몰츠와 앤디 페티트의 눈부신 투수전으로 진행된 5차전에서도 0-1로 패했다. 벼랑끝에 몰린 6차전, 매덕스가 나섰다.

매덕스는 8회 2사까지 양키스의 7차례 공격을 완벽히 막아냈다. 하지만 3회 1사 3루 단 1번의 위기에서 조 지라르디에게 3루타, 데릭 지터에게 적시타, 다시 2사 2루에서 버니 윌리엄스에게 적시타를 맞고 3점을 내준 것이 승부를 갈랐다. 결국 애틀랜타는 2-3으로 패했고 시리즈는 끝났다. 1999년, 매덕스는 월드시리즈에서 또 양키스를 만났다. 하지만 1차전에서 7이닝 4실점(2자책) 패전을 안았고 애틀랜타는 4연패로 물러났다.

76구로 끝내다(1997년 7월23일)
짐머와의 만남을 통해 생명의 위협을 느낀 매덕스는 이후 '맞혀잡기의 달인'이 됐다. 7월23일 컵스전은 매덕스 피칭의 결정판이었다. 1실점 완투승을 따내는 동안 매덕스가 던진 공은 단 76개. 1990년 밥 턱스버리의 76구 이후 최소투구수 완투승 기록이었다. 이날 매덕스가 상대한 타자는 31명으로, 매덕스는 한 타자당 평균 2.5개의 공을 던졌으며 1이닝을 끝내는데 8.4개의 공을 사용했다. 타자가 쉽게 맞힐 수 있는 공, 그러나 정확히는 맞힐 수 없는 공. 그것이 매덕스가 생각한 최고의 공이었다. 모든 경기의 투구수가 전산처리되기 시작한 1988년 이후, 매덕스는 28번의 '100구 미만 9이닝 완투'를 기록했다.

14K(2001년 5월3일)
매덕스는 '삼진은 맞혀잡기의 우연한 산물이어야 한다'는 딕 폴 투수코치의 지론을 충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매덕스의 맞혀잡기에도 타자들은 삼진을 당했다. 2001년, 당시 최강의 공갈포 군단이었던 밀워키가 매덕스에게 14K의 개인 최고기록을 선사했다. 매덕스는 마지막 10타자 중 8명을 삼진으로 돌려세웠으며 개인 통산 100번째 완투경기를 달성했다. 14K는 박찬호의 최고기록이기도 하다. 박찬호의 제물 역시 2000년의 밀워키였다.

2000년 9월24일, 매덕스는 몬트리올을 상대로 7회까지 13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투구수는 81개. 완투도 충분했다. 하지만 스코어가 10-0으로 벌어져 있다는 이유로 매덕스는 더 이상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다. 2005년 7월27일, 삼진에 관심이 없는 매덕스는 3000K를 달성한 13번째 투수이자, 300승-3000K를 모두 달성한 9번째 투수가 됐다. 1000개 미만의 볼넷으로 3000탈삼진을 달성한 것은 퍼거슨 젠킨스에 이어 역대 2번째였다(이후 커트 실링과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가세).

스스로 기록을 멈추다(2001년 8월13일)
'기록의 사나이'로 통하는 그이지만 정작 매덕스 본인은 기록에 관심이 없다. 매덕스는 1995년 기록에 신경을 쓰다 투수인 조이 해밀턴에게 볼넷을 내줘 51이닝 연속 무볼넷이 중단된 후 기록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 2001년, 마침내 매덕스는 70⅓이닝 연속 무볼넷으로 내셔널리그 최고기록인 크리스티 매튜슨의 68이닝 기록을 경신했다. 빌 피셔의 메이저리그 기록까지는 14이닝이 남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음 등판에서 매덕스는 기록을 스스로 중단했다. 3회 1사 2루에서 스티브 핀리를 고의4구로 거른 것이었다. 그에게는 기록보다 팀의 승리가 더 중요했다. 매덕스는 다음 타자 대니 바티스타를 3루 땅볼로 잡아낸 후 다시 대미언 밀러에게 고의4구를 주고 투수 알비 로페스를 2루 땅볼로 잡아내 목적을 이뤘다.

2002년 정규시즌 마지막 등판. 5회까지 55개의 공을 던진 매덕스는 6회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다. 디비전시리즈를 대비해 무리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아웃카운트 2개가 모자라 결국 매덕스의 14년 연속 200이닝 기록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만약 6회까지 던졌다면 매덕스는 19년 연속 200이닝을 달성할 수 있었다.

300승, 클레멘스(2004년 8월30일, 2005년 4월30일)
2004년 매덕스는 12년 만에 다시 컵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컵스 팬들에게 300승을 선물했다. 이듬해 305승 매덕스와 329승 로저 클레멘스의 300승 투수 대결이 성사됐다. 메이저리그에서는 1987년 돈 서튼-스티브 칼튼 이후 18년 만이었지만, 내셔널리그에서는 1892년 이후 113년 만에 탄생한 대축제였다.

소문난 잔치는 먹을 것도 많았다. 6이닝 2실점의 매덕스는 7이닝 3실점의 클레멘스를 제치고 승리투수가 됐다. 클레멘스는 7회초 제로미 버니츠에게 결승 솔로홈런을 맞고 패전투수가 됐다. 반면 투타대결에서는 매덕스가 2타수 무안타, 클레멘스가 2타수2안타를 기록했다. 맞대결 당시 24승이었던 차이는 이제 7승으로 줄어들었다. 매덕스와 클레멘스가 다른 한 가지. 매덕스는 마운드에 계속 오르는 이유가 즐거워서라고 한다.

두개다 중복되는 이야기도 있고
너무 길게 붙여 넣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가지다.
76구 완봉승과  70⅓이닝 연속 무볼넷기록을 고의사구로 스스로 멈춘 것.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이 있다면 그런 것 일거다.
자신의 기록을 스스로 멈춘다는 것.
칼 립켄 주니어 처럼 말이다.

매덕스는 정말 대단한 선수였다.
난 지금은 레드삭스 팬이지만 그래도 난 패드로보다 그렉 매덕스를 더 좋아한다.
왜냐면 처음 메이저리그를 봤을 때 가장 좋아했던 선수이기도 하고.
뭐라고 해야할까.
난 파이어폴러보다 커맨드가 훌륭하고 안정감이 좋은 그런 선수를 선호하게 된 것도.
다 매덕스 때문이다.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할지 몰라서 잔뜩 긁어다 붙이기만 했는데.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사진을 마지막으로 붙이고 마무리 짓는다.